AI 초안으로 협업하기

며칠 전, 기획자의 AI로 만든 화면 초안이 디자이너의 업무 영역 침범이라는 글이 주목을 받았다. 사실 AI를 도입한 조직이라면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AI 초안으로 원활히 협업하려면 다음 3가지가 정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 협업에 적합한 AI 초안이란
  2. 무엇을 의도한 것인가
  3. 누가 무엇을 결정하는가

1. 협업에 적합한 AI 초안이란

모두가 “AI 초안”이라고 부르지만, 그 형태는 판이하다. 이커머스 서비스에 신규 배너 섹션을 추가한다고 가정해 보자.

  • 초안 A) 서비스의 프론트엔드 코드를 기반으로 이번에 추가되는 섹션만 핀포인트로 변경하고, 신규 섹션의 인터랙션을 꼼꼼히 확인한 후 전달한다.
  • 초안 B) AI에게 이렇게 요구한다. “이커머스 사이트인데 상단에 배너 섹션이 추가된 화면을 만들어 줘.” 유명 커머스 플랫폼을 닮은 페이지의 상단에 배너 섹션이 추가된 디자인이 나왔다. 자사 서비스와 얼추 비슷하지만, 디자인 디테일은 전혀 다른. 이번 변경은 배너 섹션 추가이니 알아볼거라고 생각하고 전달한다. “이번에 이렇게 작업 부탁드립니다” 라는 메시지와 함께.

두 초안에 대한 디자이너의 반응은 다를 수밖에 없다. 무엇을 어디까지 어떻게 작업해야 하는지 금방 알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초안 A이다. 하지만 AI를 갓 도입한 조직에서는 초안 B가 넘어오는 일이 적지 않다. 실제로 나(PM)에게 몇 달 전 전달된 UI 변경 요청안이 그랬다.

왜 이렇게 다른가? AI는 기본적으로 피델리티가 높은 산출물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AI는 사람이 지시하지 않은 “빈 공간”을 최선을 다해 메꾼다. 그 결과물은 얼핏 보면 그럴듯하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허술한 지점이 보이고, 무엇보다 기존 서비스의 맥락과 무관하기에 협업자 간 불필요한 마찰의 원인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AI에게 제약사항과 맥락을 최대한 전달해야 한다. 개발 쪽에서 화두였던 하네스 엔지니어링의 개념과 유사하다고도 할 수 있다. 제약 없이 만들어진 프로덕트 초안은 AI 슬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쓸데없는 디테일은 소음이다. 맥락과 무관한 디테일이 채워지면 핵심을 파악하기 힘들어진다. 동료가 붙여 넣은 AI 답변에 짜증이 난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프로덕트 협업을 위한 초안도 마찬가지이다. 의도를 빠르게 캐치할 수 있도록 정제되어 있어야 한다. AI 이전에 텍스트나 와이어프레임으로 기획을 전달했던 건 기획자가 색칠할 줄 몰라서가 아니다. 그 방식이 핵심에 집중하며 각자의 전문성을 살리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화면 변경 작업이라면, 초안에서도 해당 부분만 변경되어야 한다. 서비스의 프론트엔드 코드를 기반으로 초안을 만들거나, 프롬프트에 최소한 스크린샷이라도 넣어서 불필요한 소음을 줄이자.

2. 무엇을 의도한 것인가

모든 작업에는 의도가 존재한다. 의도가 명확하지 않으면 생산 속도가 빨라진 AI 시대엔 더 빠르게 산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그 의도는 직접 말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다. “프로토타입을 써 보면 알 수 있다”는 생각은 반만 맞다. 깔끔하게 만든 완벽한 초안이 아니면 여간해선 성립하기 어렵다.

AI 이전처럼 빡빡한 기획서/PRD를 만들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물론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 동작하는 프로토타입이 있다면 많은 설명을 생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햄버거 버튼을 누르면 사이드바가 나온다’ 같은 일반적인 플로우는 AI도 잘 알기 때문에 AI가 만든 디테일이 괜찮을 수 있고, 협업자와 프로토타입으로 빠르게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서로 고민할 여지를 줄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초안과 함께 전달하는 메시지는 다음에 집중해야 한다.

  • 이번 변경의 주요 사항은 무엇이고
  • 왜 요청하게 되었으며
  • 기대하는 효과는 무엇인가

누군가는 기획 의도와 목적은 불필요하고, 할 일만 명확하게 주면 된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누구나 프로덕트에 쉽게 기여할 수 있기에, 모두가 프로덕트 마인드를 갖출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것을 왜 하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모든 직무의 사람들이 이를 고민할 때 AI를 활용한 업무가 수월해진다.

3. 누가 무엇을 결정하는가

모두가 쉽게 기여하게 되면서 생기는 부작용이 있다. 전문 분야 밖인 영역에도 ”이게 더 좋은데“라는 말을 쉽게 하는 것이다. 디자이너들은 결과물이 눈에 보인다는 이유로 이런 고통을 오래전부터 겪어왔다. ”사장님이 간섭할수록 디자인이 구려진다“ 는 이야기도 있지 않나. 그러니 유독 예민한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말을 얹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좋은 아이디어는 비전문가도 낼 수 있다. 다만 이렇게 뱃사공이 많은 상황에선 배의 방향을 정하는 사람이 중요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의 결정권이 존중되어야 한다. 그리고 AI 초안은 그 결정을 명확히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 쓰여야 한다.

이는 다른 직무에서도 동일하다. 디자이너가 사업 전개 로드맵을 만든다면? 엔지니어가 신상품 홍보 플랜을 제안한다면? AI 시대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제안하는 측이 결정권을 가진 게 아니라면 AI 초안은 가안 1 정도로 공유하고 담당 팀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상식적일 것이다.

AI는 목적이 아니라 일을 잘하기 위한 수단이다. AI는 무엇이든 빠르게 만들어 주지만, 산출물을 빠르게 낸다고 조직 전체의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AI를 쓰는 이 시점엔, 산출물을 넘기면 업무가 끝난다는 생각은 버릴 필요가 있다. 제작 속도가 빨라진 만큼 자주 커뮤니케이션하며 빠진 구멍을 채우고, 더 좋은 결과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AI 초안은 그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줄이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당신의 AI 초안은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낮추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협업자를 찾아가서 효율적인 협업 방식을 조율하자. 자신의 AI 초안이 어떤 점에서 부족한지, 자신이 생각하는 AI 초안의 장점은 무엇인지, 어떻게 사용하면 함께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을지. 앞으로도 같이 일할 사람이라면, 답은 그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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