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번 총선엔 비슷한 당이 많을까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

4월 15일에 예정된 총선의 홍보물이 왔다. 평소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어 선거 시기가 오면 홍보물을 보고 누구를 뽑을지 결정하는 편이라 이번에도 홍보물을 읽어보았다. 물론 언제나 이상한 당들도 많이 끼어있기 때문에 반쯤은 개그 프로를 보는 느낌으로 보기도 한다.

아무튼 이번 홍보물을 보던 중 이상한 점이 있었다. 주요 정당과 거의 동일한 이름을 쓰면서 로고와 색깔까지 비슷한 당들이 비례대표 번호의 꽤 앞번호에 있는 것이었다. 예전에도 한나라당 처럼 기존에 있다 없어진 유명 정당의 이름을 가져다 쓰면서 잘 모르고 찍는 표를 노리는 당들은 있었지만, 이렇게 현재 존재하는 당의 이름과 이미지를 그대로 쓰는 경우는 처음 보았기에 왠지 의아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저 당들의 이름을 검색해보니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이라는 단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읽어보니 이번에 바뀐 비례대표 시스템을 노리고 만들어진 정당이라고 한다. 바뀐 시스템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한다. 왠지 재밌어보여 어떤 내용인지 찾아보았다.

선관위에서 만든 위 소개 영상을 보니, 기존에는 비례대표와 지역구가 완전 별도로 선출되었는데,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간단히 말하면) 전체 국회 의석 중 비례대표(정당) 득표율로 차지할 수 있는 의석 수에서 지역구가 차지한 만큼을 제외한 나머지가 해당 정당의 비례대표 의석수가 된다고 한다.

그 얘기는, 주요 정당에서 지역구 의석을 많이 차지하게 되면 비례대표 지지를 많이 받더라도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하게 된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최대한 많은 의석을 확보하려면, 주요 정당에서는 지역구 의석을 확보하고, 정치적 뜻을 같이하는 (대신 지역구는 포기한) 위성 정당에서 비례대표 표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여 결과적으로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모두 갖는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되는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장점은 지역구에서 선출되기 어려운(스타 정치인이 없거나, 지역 기반이 약하거나 등등 여러 요인이 있겠다) 군소 정당이라도 전국적으로 충분한 지지를 받는다면 의석을 확보할 수 있어 소수 의견이라도 보다 더 잘 대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요 정당에서 위성정당을 내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모두 가져간다면 그 의도와 일부 배치되는 점이 있다보니 이를 두고 “꼼수”라고 부르는 것이다.

한편 군소 정당이라도 쉽게 의석을 차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정말 극단적인 정치 이념을 가진 정당이라도 이전보다 의석을 차지하기 수월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그런 이념에 동의하는 유권자가 많다면 그걸 반영하는게 합리적인 정치 체제일 것이다. 다만 이런 이상한 상황은 피하기 위해 비례대표 투표에서 3%이상 득표했거나 지역구에서 5석 이상 차지한 정당에 대해서만 비례대표 의석을 할당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투표를 하는 유권자로서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지 생각해보자. 가장 큰 부분이라면 역시 장난으로 던지는 표를 자제해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자칫해서 이상한 정당이 3% 이상의 지지를 받아 의석을 얻게될 경우, 그런 정당의 의원이 하는 헛소리들을 열심히 들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표를 던지는 경우도 많을 것 같다. 그러나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면 그 의견이 그만큼 언론에서 많이 다뤄지게 되고, 자극적인 내용이니 인터넷 상에선 더 화제가 될거고, 그러다보면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고, 그럼 그런 정치 이념이 갖는 영향이 더더욱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블록체인의 거버넌스 구조와도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블록체인도 여러가지 투표 시스템을 통해 운영하는 방식을 도입하려고 많은 방식들이 제안되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흥미로운 점은, “정당”을 꾸리는 경우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당이 있으면 의견을 통합하여 보다 힘있게 주장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일텐데, 기존 정치는 각 지역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지역구 의원들이 기반인데 반해 블록체인은 물리적 위치와는 별개로 운영되다보니 그런 걸 수도 있겠다.

굳이 생각해보자면.. 전기세가 비싼 곳에서 블록 보상을 더 달라고 주장해본다면 어떨까. 어쩌면 지리적인 탈중앙화의 중요성이 인정되어 각 대륙 또는 각 지역마다 일정량 이상의 채굴자가 존재해야 되는 상황이 된다면 그런 의견도 내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블록체인에서 정당과 비슷한걸 찾자면 “지지자 커뮤니티”같은게 되겠다. 비트코인의 경우 비트코인 캐시나 BSV같이 별개의 블록체인으로 분리해 나갔지만, 이더리움은 PoS와 ProgPoW, 2.0과 1.0 등 여러가지 치열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음에도 아직 체인 분리까진 가지 않고 있다. 많은 결정을 “코어 개발자”라고 불리는 그룹이 진행한다는 점은 역시 의심스럽지만.. 그리고 그 코어 개발자가 되는 방법은 오프라인으로만 알려준다고 한다 🙁

아직 이런 걸 보면 블록체인 거버넌스는 갈 길이 멀었나보다.

다만 이번에 알아보면서 현실 정치 시스템에서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는, 비슷한 형태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하더라도 각 나라마다 그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소수 정당이 의석을 차지하기 위한 최소 득표율도 나라마다 다르고, 몇몇 나라는 투표 결과에 따라 국회의 전체 의석 수가 달라지기도 한다. 영국 의회처럼 비좁지 않은 나라들만 가능한 제도일 것 같다.

어쩌면 이렇게 나라마다 정치 제도가 다르다는 점이, 최적의 정치 제도라는건 없다(또는 최소한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얘기는, 아직 현실의 정치 제도도 끊임없이 발전해 나갈 것이고, 블록체인의 거버넌스 구조 역시 발전할 여지가 한참 남았다는 뜻이 되겠다.

또 하나 생각해볼 점은, 정치 제도의 우수성을 평가하는 기준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사표”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라는 점이 주로 거론되던데, 이외에 어떤 평가 기준이 있을지를 알아보는 것도 꽤 흥미로울 것 같다. 이건 정치학의 영역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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